데려오라 | 김만섭 | 2021-03-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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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8:31-43절 개역개정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성경 : 누가복음 18:31~43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깨닫지도 알아듣지도 못한다. 마치 영적 소경처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여리고에 있던 시각 장애인은 예수님을 구약의 예언된 메시야임을 뜻하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그는 육적인 눈은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눈은 보인 것이다. 영안이 열리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예수님은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향해 너무나 당당하게 나아가신다. 모든 죄인들이 당해야 할 고난과 징계를 짊어지기 위해, 가신다. 그런데 그 걸음이 억지로나 불평하며 가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시다. 당당하다 못해 전율이 느껴진다. 믿음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고 순종한다. 믿음이란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다. 구약의 예언대로 인자이신 예수님께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것처럼 나의 삶에도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그것이 예수님처럼 혹시 고난일지라도, 내가 지은 죄에 심판일지라도, 시편 62편의 다윗처럼 진노 중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길 기도한다. 다윗처럼 하나님만 바라보듯, 예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 여리고에서 구걸하던 시각 장애인 거지였다. 마가복음에서 그는 바디메오 디메오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는 시작 장애인이었고, 거지였다. 사회적으로 밑바닥 인생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형편과 상황에서 무리가 말하는 나사렛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에 소리를 치기 시작한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한 이 말을 시각 장애인이며, 거지인 사람이 소리친다.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 같은 자들의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세상의 눈에 볼품없고, 위대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신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며, 믿음이다. 믿음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바라보는가? 로 알 수 있다. 시각 장애인은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믿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님께 소리친 것이다. 우리는 기도한다. 기도란 믿음의 외침이다. 믿음의 소리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죄와 심판에서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심을 믿기에 이 사람처럼 외치는 믿음의 소리이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가? 믿고 소리쳤다고 하는데 아무 대답도 없고, 믿고 기도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시각 장애인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소리치니 앞서 가는 사람들이 이 사람을 꾸짖는다. 마치 예수님께 오는 어린아이들과 부모를 꾸짖는 것처럼 오늘 이 사람을 꾸짖는다. 어린아이도, 장애인도 사람들의 눈에 보잘것없은 짐처럼 보였다.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할 사람들 인정받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예수님은 기억하신다. 기억만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세상이 버린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는 영접한다. 오늘 말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꾸짖고 업신여김을 받고,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을 만났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더 크게 소리친다. 더 큰 믿음의 소리로 예수님을 부른다. 예수님은 더 큰 소리가 들릴 때, 모든 사람들이 듣고 주목할 때, 그 사람을 부른다.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신다. ‘데려오라’는 말씀이 이 사람을 꾸짖던 사람들에게 책망하시는 소리로 들린다. 너희가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을 꾸짖느냐? 이 사람이 꾸지람을 당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가 책망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린다. 지금 그들의 꾸짖음 때문에 상처를 받고, 세상의 평가에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길 수 있던 그 순간, 주님은 모두에게 선언하신 것이다. 이 사람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모자란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너희가 불쌍하고 모자란 사람이다. 보아라. 알게 해줄께! 병행 본문인 마가복음 10장 50절을 보면 거지에게 전 재산과 같은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을 향해 왔다고 한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믿음으로 결단했지만, 전부를 예수님께 드리고 왔지만, 여전히 그는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데리고 오라하셨다. 오늘도 이 예수님의 세밀한 음성과 사랑이 나를 붙잡아 주신다. 그토록 괴롭게 몸부림치던 밤이 브니엘의 새 아침을 맞이한 야곱처럼 내게 임했다. 행복하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몰라서 물어보시는 것이 아니다. 알지만 물어보신다. 왜 그럴까? 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서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시각 장애인은 보는 것이고, 청각 장애인은 듣는 것이다. 보고 듣는 나는 다른 것을 원한다. 내가 원하는 소원이 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원하는 소원보다 더 중요한 소원을 풀어주신다. 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게 진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이다.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다. 내가 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보고, 경험하게 하시는 주님의 사람이 오늘 나에게도 임하길 소망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신 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길 원한다. 이 땅에서 누리는 복에서 멈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누리며, 영원히 행복하게 하시려고 이 사람에게 찾아오시고,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좋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었던 일들을 행하셨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43절은 그것을 말해 준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첫 번째는 소원대로 보게 되었고, 두 번째는 거지로 이 땅의 백성으로 비참하게 살았던 인생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행복한 인생으로 변화되었다. 땅만 보다가 죽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그 아름다운 하늘도 바라볼 수 있게 된 지혜로운 인생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높이는 삶의 변화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이 사람을 통해 백성이 다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놀라운 변화의 영향력을 보게 된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보여줘야 한다. 인생을 변화시키시고, 새로운 인생을 통해 그 사람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가 되는 것이 오늘 내가 구해야 할 가장 큰 기도의 제목이다. 동문교회 담임목사로 나의 삶에 놀라운 변화들을 통해 먼저는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나의 삶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변화되길 소망한다. 그래서 결단한다. 이 사람이 자신 앞에 놓였던 장애물을 뛰어넘었던 것처럼 나도 더욱 크게 소리치겠다. 귀에 들리는 음성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믿음의 소리를 더욱 크게 외치겠다. 그래서 시각 장애인을 데려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사람을 데려왔던 그 어떤 사람처럼 나도 한 영혼,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선한 목자가 되길 기도한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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