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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승리로 나아가려면 김만섭 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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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60:1-12절 개역개정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2.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3.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4.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5.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6.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8.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

9.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1310일 수요일

 

성경 : 시편 60:1~12

제목 : 절망에서 승리로 나아가려면

 

오늘 시편은 150편 중에 유일한 다윗이 교훈하기 위하여 지은 믹담이란 표제를 가지고 있다. 어떤 교훈일까? 다윗은 왜 이 시편을 통해 교훈하길 원했을까?

 

오늘 시편의 배경은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에라고 한다. 대부분 학자들은 사무엘하 8장과 역대상 18장이 그 배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배경에서 다윗과 이스라엘은 패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언제일까?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전쟁 초반에는 다윗과 이스라엘이 밀리고, 패배도 했던 것 같다. 다윗은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할 것 같은 위기에 순간에 이 시를 통해 하나님께 고백한 것이다.

 

전쟁 중에 쓴 시가 시편 60편이다. 다윗은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도망가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께 탄식하며, 간구하며, 매달린다. 11절에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라고 고백한 후 12절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다윗은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거나 믿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고,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싸운다라고 고백한 것이다. 다윗은 도망가지 않았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나서 승리한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도망자가 된다. 승리를 보기도 전에 포기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신뢰하는 자들은 용사가 된다. 끝까지 싸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다윗은 우리라고 말하고 있다. 온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은 혼자만의 승리가 아닌 이스라엘의 승리를 구하고 있다. 백성들이 자신과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용기로 싸우길 원하고 있다. 하나님의 승리를 온 나라 백성들이 함께 누리길 원하고 있다.

 

, 가정에서 멈춘 믿음의 역사가 아닌 교회와 지역과 나라와 민족 그리고 열방으로 믿음의 역사가 확장되길 소망한다. 나의 영향력이 확장되길 기도한다.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해 달라는 다윗의 중보 기도는 오늘 나에게 너무 절실한 기도이다.

 

다윗이 교훈을 위한 시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다윗의 생각과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윗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 의지하며, 도망가고, 겁쟁이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용사로 용감하게 싸워 승리하길 바라고 있다. 절망을 지나 승리의 자리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길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받는 것과 동일하다.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며, 대안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내가 의지하고 신뢰하고 따라갈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뿐이다. 잊지 말자! 기억하자!!

 

오늘 말씀은 다윗이 경험하는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승리의 자리로 나아가는 매우 귀중한 교훈이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진짜 패배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돈이 없고, 일이 잘 안 풀리고, 생각되지 않는 현상이 아니다. 진짜 패배는 하나님이 없는 것이다.

 

1~3절과 9~10절은 다윗의 탄식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그리고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승리의 본질이 사람의 수가 많고 적음도 아니고, 군사 장비도 아니고, 견고한 성도 아니고, 하나님의 동행에 있음을 고백한다. 징계는 회개와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수단이고, 징계를 통해 다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고, 무릎을 꿇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지금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환경인가? 예수 그리스도인가?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4~5절처럼 주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승리하려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는 자가 되길 기도해야 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승리의 깃발을 흔들게 하신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구원과 응답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신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6절에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셨다. 그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말씀은 사람의 말과 구별된다. 말씀은 역사하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 위기에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따.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 모두 돌보시고, 지키시며, 인도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온 열방의 통치자시며, 주권자이심을 선언한다.

 

나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구별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고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수 있을까? 지금 나에게 떠오르는 말씀은 무엇인가? 지금 나와 가정, 그리고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오늘 그 말씀이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다시 용기를 갖게 하시며, 다시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성경대로 믿고 행하며, 반드시 성경대로 성취된다. 성경대로 오시고, 성경대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시고,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나의 죽고 사는 문제는 결국 말씀이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깊이 숙성시키는 영성이 있어야 넉넉히 세상을 이길 수 있다. 거룩하신 말씀을 믿고, 붙잡고 기도하면, 반드시 승리한다. 우리가 다시 기억해야 할 말씀, 붙잡고 기도해야 할 말씀을 매일 아침마다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를 승리케 하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약속하신다.

 

사무엘하 8장에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평가한다.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늘 승리하게 하시는 인생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 다시 말씀을 편다. 다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찬양과 기도로 주님을 부른다. 말씀을 붙잡고 외친다.

 

다윗이 경험한 절망과 패배를 지나 소망과 승리의 결론이 나와 가정 그리고 교회의 결론이 되도록 다윗처럼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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