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목회칼럼 | 김만섭 담임목사 | 2024-09-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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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을 통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크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장래에 하실 일 곧 세상의 나라와 왕은 망하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망하지 않을 나라와 왕을 세우신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포로’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하며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은 높이 27m, 너비 2.7m의 금 신상을 만들어 엎드려 절하라고 명령합니다. 왜 느부갓네살 왕은 우상을 만들어 절하라고 명령할까요? 느부갓네살 왕의 모습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돌밭과 같은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와 같습니다. 꿈 때문에 번민하고 두려웠기 때문에 은밀한 것을 알고 싶어 했지만, 문제가 해결되니 자기가 우상이 되고, 또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처럼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모습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반드시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안다고 하셨습니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듯 열매로 참된 회개와 거짓 회개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눈물을 흘리면 그것이 참된 회개라고 합니다. 그러나 감정적인 눈물은 열매가 없습니다. 자기 연민의 눈물에 속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3:17~18)” 말합니다. 자신의 꿈과 해석에 답하지 못한 바벨론의 술객과 박수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고, 자신이 만든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죽이겠다고 협박한 왕과 말과 행동이 확실히 다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적용하며 살아가면 존경과 환대를 받을 것 같지만, 오히려 억울한 일과 핍박을 당합니다. 그러나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구원의 열쇠가 됩니다. “좋은 땅(진정한 회개)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풀무불)로 결실(구원, 영광)하는 자니라(눅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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