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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5일 목회칼럼(설 연휴) | 김만섭 담임목사 | 2026-0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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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9~34 말씀의 평행본문은 마가복음 10:46~52, 누가복음 18:35~43입니다. 말씀의 배경은 예루살렘 입성 직전으로 ‘여리고’에서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구걸하던 두 소경이 크게 소리 지르며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고,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중 한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거지 맹인 바디매오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마태복음 9:27~31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마 9:27). 마태는 왜? 두 소경이 눈을 뜨는 비슷한 이야기를 기록했을까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복음으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마태가 강조하고 싶은 메시야는 과연 어떤 분일까요? 두 사건에서 동일하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이사야 35:5(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처럼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는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긍휼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다가 언제 찾게 되나요? 자기의 힘이나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어떤 절박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찾게 됩니다. 자신이 죄인으로 전적으로 무능하고,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옵니다. 그때 사람들은 두 소경처럼 외칩니다. 구원은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 죄인인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갈급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 같은 죄인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죽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는 소경들을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할까요? 그들 안에 소경들처럼 절박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은 그들은 스스로 불쌍한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 아니기에 구원자가 필요 없고, 예수님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는 그들의 믿음을 이해할 수 없기에 정죄하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죄인이고 죽을 때까지 죄인인 우리는 매 순간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구원받고, 구원받은 사람만이 주님처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설 명절 동안 우리가 만나는 가족, 친척들에게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사람들은 다 떠나고, 버려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십시오. 마가복음 5:18~20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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